소감

짧은 평

보는 내내 어두운 기분이 들었다.
누군가 죽음이 유예된 글이라고 하는 것을 봤는데, 시를 읽으며 그 말에 알게 모르게 공감이 갔다.
슬프지 않게 쓰여진 시에 뿌리 깊은 좌절이 들어있다.
동시에 발전하며 사람의 정이 사라져가는 세상, 탄압에 함부로 저항하지 못하는 세상에서의 지식인의 한탄도 느껴졌다.
그럼에도 한구석에는 세상을 따뜻하게 바라보려는 시인의 마음도 읽혔다.
나는 이것이 이 사람의 심성이었다고 생각한다.
불우한 가정에서 억압적인 현대사회를 살아간 시인의 세계에는 희망이란 곧 질투와 동일시되는 감정이었다.
그렇다고 질투가 곧 희망이었던 것은 아니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그에게서 드러나는 애환의 감정.
누군가를 미워하기보다는 차라리 스스로를 빈 집에 가두고, 노인을 멸시할 때 결국 스스로를 노인으로 인식해버린다.
끝내 상처주고 싶지 않은 한 젊은이가 비관하며 자신을 깎아내려가는 과정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인상 깊은 구절

생각 덩어리

가장 인상 깊었던 시

몇가지가 있다.
아무래도 시대를 나타내는 시들도 있지만, 나는 기형도가 내면을 표현한 시들이 너무 인상 깊게 다가왔다.

첫인상

기록한 게 많은 책.
자신의 삶

첫인상

첫인상

죽은 자.
미치광이.

사회시로서는 이게 좀 기억에 남는다.

첫인상

봄을 통해 누이를 추억하는 시인.

회상시로서는 이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

시인이 말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시인은 시를 통해 무엇을 말하려 했을까?
모든 글을 쓰는 행위는 결국 어떤 의지의 발산이다.
무의식으로 글을 쓸 수는 없다.
내가 느끼는 시인은 말 못할, 허튼 부류의 아픔을 발산하고 싶었던 것 같다.
누구나 겪을 아픔이다.
가난과 변한 시대, 탄압하는 정권, 잃어버린 사랑.
그런데 누군가는 이를 극복하는 반면, 시인은 극복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극복하지 않았다고도 생각한다.
그저 멈춰서 그 아픔을 시로 다듬었을 뿐이다.
더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해 우리가 벗어내는 종류의 아픔에 머무른 시인은 그 아픔을 섬세하게 짚어냈다.
죽음을 가까이 두었기에 그랬던 것일까.

한편으로, 죽기 직전에 남긴 시작 메모가 있다.
여기에서는 위대한 잠언이 자연 속에 있음을 믿는다고 한다.
극복하지는 않았지만, 그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어딘가에 자신을 구원할 무언가를 바랐던 것 같다.

또 내 얘기를 섞고 싶지는 않다.
저 마음을 알 것 같다는 것이 나만이 아니길 바라기 때문이다.

시인에게 결핍되어 있는 것이 있었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시인은 죽음을 항상 곁에 두고 있었다.
그리고 정을 나누는 깊은 관계로 나아가지 않고자 했던 것 같다.
전체적인 시상에서도 전혀 타인과 교감을 하는 것은 느껴지지 않는다.
20. 기억할 만한 지나침에서 나오듯이, 그저 관찰자의 입장에서 공감하고 같이 아파할 뿐인 것 같다.
어째서, 그랬을까.

무언가 결핍되어 있었을까?
아니면 무언가에 좌절했을까?
그의 내면에 대한 힌트가 작품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 것 같다.

나는 그가 사람에게 다가가는 동인이 없었다고 생각한다.
생각으로 마주하는 사람과, 사회인으로 마주하는 사람.
그것 말고 나와 같은 사람으로 마주하는 사람에게 다가가고자 하는 마음이 결핍되었다고 생각한다.
이건 지극히 개인적인 내 성찰과 관련이 있기는 하다.
그것 아니고도 7. 오래 된 書籍(서적)에서 나를 떠나갔다던가, 검은 페이지라고 자신을 표현한다.
결국 누군가와의 교류를 바라지만 먼저 다가가지 않아 혼자만의 세계를 구축해나간 게 아닐까 생각한다.
12. 진눈깨비에서는 자신의 이런 상황이 달갑지는 않았던 게 아닐까 싶다.
결국 사회에서 풀어내지 못하는 겁쟁이였던 거랄까..

16. 길 위에서 중얼거리다를 보면서 들었던 생각은 혼자만의 탄식이 주된 해결책이라는 것.
해결이라 할 수 잇을지도 모르는 채 머리 속에서 반복되는 것들을 정리해나간 것이다.

검은 잎이란?

검은 잎은 자주 등장한다.
4. 나쁘게 말하다에서는 흘끔거리며 굴러갔다.
24. 입속의 검은 잎에서도 나온다.
이것이 무엇일까?
나는 사실 처음에 담배를 나타낸다고 생각했다.
고뇌에 잠길 때 담배를 뻑뻑 핀다고들 한다.
검은 잎은 불에 그을린 담뱃잎을 말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담배를 물고 입을 다문 사람들, 시인 역시 담배를 물고 입을 닫은 스스로가 또 두렵다고 한 게 아닐까.

다른 해설 글을 찾아봤을 때는 침묵한 언어, 활자를 나타낸다고도 한다.
이것도 일리가 있는 것 같기는 하다.

기형도는 노인을 혐오했을까?

6. 늙은 사람에서도 그렇고, 10. 장미빛 인생에서도 그렇고, 노인에 대한 공격적인 태도가 보인다.
왜 그랬을까?
레이디 맥도날드의 노인들을 싫어했던 것일까?
34. 노인들을 보면 날렵한 가지들을 추악하다고 평한다.

18. 정거장에서의 충고를 보면, 자신을 늙었다고도 인식한다.
자신에 대한 혐오로 이어지는 그림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해본다.

3. 鳥致院(조치원)의 검은 새는 무엇일까?

낙향한 사내의 그림자에 대한 조소같지는 않다.
어쩌면 사내의 모습에서 아직 남아있는 열망을 본 것은 아닐까?
마치 폐광촌에서 봤던 사람들의 모습 처럼.